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(문단 편집) == 도굴과 훼손 == 지안시 통구 고분군의 우산하 고분군 구역에 소재하는 삼실총(三室塚)의 경우, 방 3칸이 "ㄱ"자 형으로 배치된 독특한 형태에 벽화까지 확인된 특수한 경우로 등재 목록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으나 [[1990년대]] 말부터 [[2000년]] 사이에 [[도굴]]에 의해서 벽화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중국 측에서 원활한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미리 목록에서 제외하였다. 여담으로 삼실총을 털었던 [[조선족]] 범죄자들은 통구 고분군의 범주에 속한 장천 고분군[* 근데 말이 속해있다 뿐이지 거리가 거의 메인 통구 고분군에서 20km 정도 떨어져있다.]의 1, 2호도 도굴하여 벽화가 훼손된 바 있다. 벽화 조각은 한국으로 팔려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도굴을 실행한 조선족은 나중에 체포되어 [[사형]]당했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01&aid=0004819369|#관련기사]]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[[한국인]]이 관여되어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.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32&aid=0002085263|#관련기사]] 그래도 장천 1, 2호는 등재목록에 포함되었는데 훼손의 정도 차이에 의한 결정으로 추정된다. 백제 왕릉들 보다는 나은게 백제 왕릉의 경우 백제 멸망 후 [[통일신라]]•[[고려시대]] 때부터 도굴의 대상이되었지만 고구려 왕릉의 경우 그래도 자신들의 영역인 한반도 북부(고려)와 요동지방(발해)을 후손들인 [[발해]]와 [[고려]]가 통치했기 때문에 이들 나라가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해서 선조들의 무덤으로 간주해 국가차원에서 관리를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